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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호국인물 제2연평해전 6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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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호국인물 제2연평해전 6용사


전쟁기념관(관장 박삼득)은 제2연평해전 6용사(윤영하 소령, 한상국 상사, 조천형 중사,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를 2019년‘6월의 호국인물’로 선정, 발표 했다. 


‘제2차 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연평도 해상에서 북한의 기습 무력도발로 발생했다. 


해전 당일은 2002년 한·일 월드컵 폐막 전날로 모든 국민의 관심은 온통 터키와의 3·4위전에 쏠려 있었다. 북한은 이 틈을 타 오전 10시 경 남쪽 3마일,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에서 기습 도발을 감행, 경비정이 NLL을 침범했다. 


이에 해군 참수리-357정은 3척의 고속정과 함께 출동하여 교전규칙에 따라 퇴거 경고방송과 함께 차단기동을 개시했다. 


그러나 북한 경비정이 참수리-357정을 향해 선제 기습포격을 가하여 순식간에 조타실이 화염에 휩싸였고, 이 과정에서 정장 윤영하 소령(당시 대위)과 조타장 한상국 상사(당시 중사(진))가 전사했다. 


우리 고속정도 즉각 40mm 함포와 20mm 벌컨으로 응사했으나 함포 사격을 하던 조천형 중사(당시 하사)와 황도현 중사(당시 하사)도 전사했다. 


또한 M60 기관총 사수였던 서후원 중사(당시 하사)는 갑판에서 끝까지 적에게 응전사격을 하다 전사했다. 


의무병 박동혁 병장(당시 상병)은 부상당한 전우를 치료하던 중 전우가 적의 총탄에 쓰러지자 망설임 없이 총을 잡고 응사하다가 부상을 당했고 전투가 끝난 뒤 병원으로 후송했지만 결국 세상을 떠났다. 


전투가 개전되자 인근 해역에 있던 우리 해군 고속정도 가세하여 북한 경비정에 대응 사격을 했고 치열한 교전 끝에 경비정은 퇴각했다. 


한편, 교전 당일 자신의 다리가 절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장 윤영하 소령이 전사하자 끝까지 전투를 지휘했던 부장 이희완 중위(현 해군중령), 적의 사격으로 왼쪽 손가락이 모두 잘렸지만 한 손으로 탄창을 끼우며 사격을 멈추지 않았던 권기혁 상병, 위험에 처한 부하를 향해 아낌없이 자신의 몸을 날렸던 이철규 중사, 적의 공격으로 40mm 함포의 전원장치가 손상되자 즉각 수동사격으로 전환하여 적에게 응사했던 황창규 중사 등 참수리-357정 모든 승무원은 혼연일체가 되어 조국의 바다를 지켜냈다. 


대한민국 해군은 2008년 제2함대사령부 기지 내에 안보공원을 조성하고 전적비를 건립해 제1·2연평해전의 승리를 기념하고, 매년 6월 29일에는 전적비 앞에서 제2연평해전 6용사를 위한 추모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또한 침몰한 참수리-357정을 인양해 제2함대 서해수호관 초입에 전시하여 그 날의 교전을 기억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참수리급 고속정(PKM)의 뒤를 이어 유도탄고속함(PKG)을 건조하면서 1번 ~ 6번함의 함명을 6용사의 이름으로 부여했다. 전쟁기념관 야외전시장내 수공간에는 참수리-357정을 실제 크기로 제작, 전시하여 관람객들에게 6용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추모하는 안보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정부는 6용사의 공훈을 기려 각각 1계급 특진을 추서했으며, 윤영하 소령과 박동혁 병장에게는 충무무공훈장을, 한상국 상사·조천형 중사·황도현 중사·서후원 중사에게는 화랑무공훈장을 서훈했다. 


6월 13일(목 14:00)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는 유족 및 관련 주요 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고인을 추모하는 현양행사가 거행된다. 



[사진제공 : 전쟁기념관]


"본 저작물은 전쟁기념관에서 '2019년'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보도자료를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정책브리핑 사이트 www.korea.kr 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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