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 서거 제53주기 추모식
7월19일(목) 오전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 조국의 독립운동에 헌신하고 초대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이바지한 이승만 전(前) 대통령의 서거 53주기를 기리는 「이승만 대통령 서거 제53주기 추모식」이 19일(목)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다.
□ (사)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회장 신철식)에서 주관하는 이 날 추모식에는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 유족, 독립운동 관련 단체장, 시민 등 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 기도, 참석 내빈의 추모사, 유족 인사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우남 이승만 박사 공적]
우남 이승만 박사(1875. 3. 26.~1965. 7. 19.)는 황해도 평산에서 출생하였다. 1896년 서울에서 서재필의 지도로 협성회(協成會)를 조직하여 《협셩회회보》라는 주간신문을 발간하고, 논설위원으로 러시아의 절영도조차에 대해 국민이 합심하여 국권보호에 나설 것을 촉구하여 조차요구를 철회시켰다. 《협셩회회보》를 우리나라 최초의 일간지인 《매일신문(每日新聞)》으로 전환시킨 뒤 협성회 회장 겸 매일신문 사장으로 외국의 이권침탈을 저지하는데 앞장섰다.
1898년《뎨국신문》창간에 참여하여 민중계몽에 힘쓰는 한편 독립협회 총대위원으로 선출되어 개혁운동에 가담했다. 1899년 1월 만민공동회 활동과 관련된 쿠데타음모 혐의로 체포되어 종신형을 선고받고 만 5년 7개월의 옥고를 치렀다. 이 때 그의 정치 사상을 가장 잘 표현한 「독립정신」을 저술하여 한국민의 자주독립의식 고취, 한국의 정치변혁의 필요성, 개화와 외교의 중요성 등을 한국의 독립보전방책으로 내세웠다.
1919년 4월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으며, 1921년 5월에는 워싱턴 군축회의, 1933년에는 제네바 국제연맹회의에 참석하여 한국의 독립을 위해 활동했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 주미외교위원회 위원장이던 박사는 국민의 단결을 호소하는 육성방송으로 희망과 용기를 북돋웠다. 일본이 패망하자 1945년 10월 귀국하여 “뭉치고 엉키라,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못 사나니 다 같이 하나로 뭉치자”고 역설하였다.
1948년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정부에서는 박사의 공훈을 기려 1949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하였다.
"본 저작물은 국가보훈처에서 '2018년'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이승만 대통령 서거 제53주기 추모식 보도자료를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정책브리핑 사이트 www.korea.kr 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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